가녀린
선 끝에 서서
수화기는 목이 쉰다
마른 풀숲더미에
쥐불만한
불씨가 일며
창백했던 기억들이
사각 공간에 너울대고
밤새 쓴
그 긴 편지가
금속 울음에 젖는다
-신군자의 「가을밤 전화벨 소리는」 전문
앞의 시에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시어의 선택과 배열에서
오는 음악성으로 실현된다. 비비추가 백합과의 다년생 산초라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비비추 비비추”로 인하여 “눈 비비며” 다가서는 잊었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뒤의 시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삶의 편린들을 읽어냄으로써 시적 하자의 모순된 행동과 태도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철저하게 개별화된 사적인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비비새 우는 창가에서 추억의 불씨를 지피며 밤새 긴 편지를 쓰고, 상대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끝없이 울리고,
그 소리가 결국에는 “울음”으로 변하여 화자를 울리고 만다. 이런 파국의 원인은 .........
가을에게 / 신군자
아이는 파란 크레파스로 하늘을 칠하고 있다
목마른 가지마다 칭칭 감겨 우는 바람아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엔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니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시조 같고, 어떻게 보면 자유시 같다. 종장을 읽어보면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엔/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니’로 읽힌다. 음수율이 3855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조의 종장을 3543조라고 하는데 너무 넘친 것이다. 중장에서는 ‘목마른 가지마다 칭칭 감겨 우는 바람아’라고 바람을 불러댔는데, 이때의 바람은 작자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대변자인 것 같다. 칭칭 감겨 우는 존재의 바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장의 내용은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단절을 의미한다. 시간은 연속성이 있는 건데, 끊어졌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자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바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작자 자신에게 한 질문 같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에는 정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광녕(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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