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평

한국 현대시의 형상성과 풍경의 깊이 / 저자 임환모 교수 (전남대)

고운흙 2015. 4. 7. 22:20

 

 

 

가녀린

선 끝에 서서

수화기는 목이 쉰다

 

마른 풀숲더미에

쥐불만한

불씨가 일며

 

창백했던 기억들이

사각 공간에 너울대고

 

밤새 쓴

그 긴 편지가

금속 울음에 젖는다

 

-신군자의 가을밤 전화벨 소리는전문

 

앞의 시에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시어의 선택과 배열에서

오는 음악성으로 실현된다. 비비추가 백합과의 다년생 산초라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비비추 비비추로 인하여 눈 비비며다가서는 잊었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뒤의 시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삶의 편린들을 읽어냄으로써 시적 하자의 모순된 행동과 태도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철저하게 개별화된 사적인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비비새 우는 창가에서 추억의 불씨를 지피며 밤새 긴 편지를 쓰고, 상대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끝없이 울리고,

그 소리가 결국에는 울음으로 변하여 화자를 울리고 만다. 이런 파국의 원인은 .........         

 

 

 

 

가을에게  / 신군자

 

아이는 파란 크레파스로 하늘을 칠하고 있다

목마른 가지마다 칭칭 감겨 우는 바람아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엔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니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시조 같고, 어떻게 보면 자유시 같다. 종장을 읽어보면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엔/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니로 읽힌다. 음수율이 3855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조의 종장을 3543조라고 하는데 너무 넘친 것이다. 중장에서는 목마른 가지마다 칭칭 감겨 우는 바람아라고 바람을 불러댔는데, 이때의 바람은 작자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대변자인 것 같다. 칭칭 감겨 우는 존재의 바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장의 내용은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단절을 의미한다. 시간은 연속성이 있는 건데, 끊어졌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자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무슨 색깔로 칠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질문은 바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작자 자신에게 한 질문 같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에는 정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광녕(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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