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제 좋은 일

고운흙 2008. 9. 5. 22:23


 옛말에 ‘제 좋으면 평양감사도 못 말린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제 좋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뜻대로 이루어 나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여기서 ‘제 좋은 일’이란 반드시 생계를 위한 직업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무도 못 말리는, 즉 고집스럽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어떤 일을 뜻한다


 녹음을 시작한지 올해로 어언 7년여 시간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 동안 사무실 이전을 세 번이나 했고, 녹음실 환경도 아직 미비한 점은 있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아야 하는 찜통 같은 작은 공간에 나를 가두어 놓고, 마이크 앞에 앉아서 녹음 준비를 할 때도 내 마음은 그렇게 편안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 일이 바로 내가 찾아낸 나만의 ‘제 좋은 일’의 길이 아닌가 생각 된다.
 내게 있어 이 일을 ‘봉사’라는 표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드라도 좋은 소설을 선택해 놓고 녹음을 시작할 때면 늘 고민 아닌 갈등을 겪는다. 어떤 목소리로 읽으면 이 내용에 잘 어울릴까. 밝고 씩씩하게? 아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도 아님 약간 익살스럽게? 아님 신중하고 긴장감 있게? 등등....귀로 듣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서,
또 읽는 방법, 속도, 리듬에 따라서,
혹은 읽는 사람의 음성이나 음색에 따라서 귀로 들어서
내용을 이해해야만 하는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 성우들처럼이야 어림없는 얘기이지만, 그래도 그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나 사투리까지도 어느 정도는 구분해서 읽어야 듣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저런 행복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녹음하는 시간만은 늘 즐겁기만 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직장생활 관계로 녹음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많이 할애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도 좀 더 많은 책을 녹음해서 우리 시각장애우님들에게 마음의 길을 열어드리며 동시에 영원히 “내 좋은 일”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2005, '징검다리' 봄 호 <고운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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