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스크랩] 장윤우 12시집 반추(反芻) 초안-

고운흙 2009. 1. 24. 09:11

 

 


(뚜벅이) 반추(反芻)


장윤우 12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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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작품/ 장윤우작 <사슴과 잘린 나무들>






            목훈
































머리말(序言)

72년도 시선집 <형해(形骸)의 삶>이래 5년만의 출간이 된다,

“소띠”라서 그런가, 평생을 고된 일만하고 살아왔다. 과연 “늙은 소의 되새김질”이 이제부터 얼마나 더 갈까,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임원으로 임기 9년여 ,동안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작업을 해내지 못하였다. 업무보다는 보이지 않는 제약이 뒤따르고 10000여 전국회원들 간의 인연이 그러했다.

나의 후반기 시작 업은 황폐한 도시일과의 전선(戰線)에 서서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과정의 파편(破片)이라 해도 좋다. 

1060년, 피난지 바닷가 사춘기(思春期)소년의 “꿈”이었던 순수와 신 서정을 추구해왔지만 나도 모르게 형해(形骸)의 삶이 돼버렸다. 청운(靑雲)의 꿈은 빛바랜지 오래된다. 그래서인지 왠지 조급해진다. 70줄에 들어서면서 시가 보이고 내가, 자아(自我)가 무언가 조심스러워진다. 문단역사에 어찌 남을는지. 현재보다는 후대(後代)의 평가에 신경이 곤두선다.

허나 수록된 66여점은 반드시 내 뜻이라고는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청탁에 의해서 혹은 쫓기는 심경으로 남겨진 산물(産物)이다. 13권이라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그 외 산문집과 연구집, 교과서까지 합치면 수적으로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또 다른 분야(미술,조형)에서의 업적은 제외하였다.

나이가 이쯤이면 자신의 이름에, 처신에 책임을 져야한다. 언제 불려 갈는지도 모른다.

기억도 쇠잔(衰殘)해가고 주위 문단,어르신, 동료들도 멀리 떨어져 간다. 우여곡절,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넘어오고 뒤돌아보는 인생행로를 뚜벅이 걸음으로 되새김질하면서 거짓 없이 열심히 쓰고 기도하는 경건(敬虔)함으로 여생(餘生)을 살아가련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변세화,한경아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목훈(木薰) 거실주(居室主)


머리말  ...........................................

약력   ...........................................

작가편린  .......................................

화보   ........................................


Ⅰ.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 오솔길    ................................................

‧ 초록의 莊園  ...........................................

‧ 모두 끝나 가는가  .....................................

‧ 장능(莊陵)  .............................................

‧ 얼굴에 묻어나는 순수 ................................

‧ 웬 땀을 그리 많이   ........................

‧ 결과는 쓴 웃음뿐 .......................................

‧ 시험감독   ...........................................

‧ 하늘공원    ...........................................

‧ 매실 차 한 잔   .......................................

‧ 삶의 무게   ...........................................

‧ 피곤한 일상   ...........................................

‧ 무심(無心)의 물가   ...................................

‧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 독도(獨島)에 간다    ..................................

‧ 화려한 고독

‧ 뉴욕에서 보내온 결혼사진

‧ 쓸모없는 남자    .........................................

‧ 제기던 시대는 가버리고  .............................

‧ 남는 나이 빼어먹기   ................................


Ⅱ. 반추(反芻)


‧ 되새김질   ...........................................

‧ 뚜벅이 반추   ...........................................

‧ 비음(鼻音)고(考) ........................................

‧ 어느 날 회장실의 독백 ..............................

‧ 잠옷   ...........................................

‧ 보낸 세월   ...........................................

‧ 춘색(春色) - 1   ......................................

‧ 춘색(春色) - 2   .......................................

‧ 늑대목도리와 여우벨트

‧ 존재(存在)의 의미(意味)

‧ 카페, 당선작 없음

‧ 기다미의 갈 까마귀

‧ 사태(沙汰) - 1

‧ 사태(沙汰) - 2

‧ 사태(沙汰) - 3

‧ 사태(沙汰) - 4

‧ 사태(沙汰) - 5

‧ 모노크롬의 고독(孤獨)

‧ 기요토의 불  ...........................................

‧ 무정한 주인을 위로 말라

‧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온 淸淨한 시인이어라


Ⅲ. 시리고 시린 날


‧ 샛노란 은행잎들 떨어져 가는데

‧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 매연(煤煙)과 구토(嘔吐)

‧ 418호실  ...........................................

‧ ‘르네’가 ‘라이너’로 바뀐 이유

‧ 옛날이여 오라, 카츄사를 그린다

‧ 남항(南港)  ...........................................

‧ 부 채 -1  ...........................................

‧ 조선의 부채 - 합죽선(合竹扇) ....................

‧ M에서 M으로  ...........................................

‧ 소생(蘇生)의 계절  ......................................

‧ 비 내리는 獎忠壇을 바라며 ..........................

‧ 아기 고양이   ...........................................

‧ 드디어 ‘넘’을 잡았다 ..................................

‧ 충격은 충격을 낳고   ..................................

‧ 시리고 시린 날  ..........................................

‧ 영산(靈山)  ...........................................

‧ 만보계  ...........................................

‧ 단노(だんの)호   .........................................

‧ 현해탄은 알고 있었나

‧ 한난(寒蘭)  ...........................................

‧ 공휴일에  ...........................................

‧ 동강은  ...........................................

‧ 버린 세월 ...........................................

‧ 망중한(忙中閑)  ...........................................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오솔길


메마른 갈대의 휘청한 허리를 스치는 바람은

웬일인가.

나이가 칠순(七旬)쯤이면,

거의 무너져버린 거라고 믿어 왔는데

귓전으로 밀어오는 사각 사각거림

사춘기(思春期)소년으로 가슴이 울렁거리네.

그 길은 아마도 아스라이 두고 온

동해안

어느 바닷가 언덕쯤일세.
















 모두 끝나 가는가!


저어 곳에 무언가 보인다.

허깨비 같기도 하고 글쎄,

너에겐 안 보인다고?

“더윌 먹었나.”

나만 끝나가고야 마는가.

옥죄여오는 무더위

이글거리고, 찐득하고, 짜증만이 늘어나는

한 낮에, 호올로

반나(半裸)의 노객(老客)은 눕다, 앉았다

등골을 타고 내리는 비지땀

“제기랄”

바이러스를 먹었는가

더위에 지쳤는가

PC앞에 붙어 앉아서

모니터만 멀거니 들여다본다.

폭염을 피하는 사이버와의 실랑이,

애당초, 이렇게 끝나가는 인생 살이었나

그러자니 아아!

무언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허상(虛像)들이

나를 손짓하는 실체(實體)로 건들거리며 온다.


요란스런 매암, 스르래미 소리에 묻혀

나의 철조각 분신들이

일제히 기웃거린다.

검으틱틱 한 쇠붙이더미가

마당에 기우뚱 서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주인노릇도 못하는 주제에 비웃는다.


스스로를 ‘낭패한 술꾼’으로 자조하며

허탈한 웃음만 흘린다.

“서글픈 피에로.”

“비굴한 낙오자.”

“거세(去勢)된 고물딱지.”

그래도 어느 시절에는 고독한 성주(城主)로

시대의 구도자(求道者)로 자처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열대야(熱帶夜)에도

호올로 눈뜨고 지킨다.

지나던 바람들에게 잎을 흔들며

먼 길에 평안(平安)하라는 인사를 던진다.

입추(立秋)는 어디쯤에 오고 있느냐고

주인을 버린 금속나무들은

더위에 지친 새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때로는 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과객들의 지표가 되어준다.

외롭고 찌그러지고 아파도

말할 곳조차 없는 나무들은

작고 작은 풀잎 한 겹에도

피곤하나 잔잔한 미소를 던진다.

 장능(莊陵)


장장, 600여년을 넘어오도록

지켜올 너의 이유가 무언지

여기에 와서야 알 것 같다.


굽이굽이 물들이

여한(餘恨)을 돌고 돌아온

동강(東江)은 이미 알고 있어도

말이 없었거늘.


아아~

애달프고 원통한 사연을

어찌 잊으랴만,

차마 담아 남길 수가 없어라.


듣고 지켜온 관음송(觀音松)

네게 거듭 물어본다만

결코 대답이 없네.


앳되고 꿈 많던 십대 여린 왕에

사약(死藥)을 내린

삼촌 세조(世祖)의 횡포는

누대(累代)에 잊힐 수 없어라.



단종(端宗)의 피어린 애사(哀史)가

영월 땅 오지(奧地)

청명포에 묻혀 있었구나.


사육신(死六臣)의 절규 울리는

오늘 노송(老松)의 숨결과

의로운 충신의 원혼(冤魂)들이

떠도는 물위를 굽어본다.
















 초록의 장원(莊園)


가슴 설레는 초여름의 교향악

싱그러운 풀벌레의 합주(合奏)속에

밖으론 눈부신 초록(草綠)이

끝없는 장원으로 펼쳐간다.

오드리햅번을 닮은 풀잎의 요정(妖精)이

살짝 내밀 것만 같은

가슴 설레는 초여름의 교향악

싱그러운 풀벌레의 합주(合奏)속에

금시라도 터질 것만 같아

눈부신 광망(光芒)모두의 마음을 펼치고

그만 행복에 겨워

눈에 이슬이 맺히고 말았네.

내가 사는 이웃에 바로

유토피아가 있었네.











 얼굴에 묻어나는 순수


강원도하고도 저 위 켠 끝자락

해안도시의 찝찔한 길거리에서

이 나라의 시운(時運)을 부여안고

실로 밑동부터

순수를 살려내기 위한

모습이 순진하고 촌스럽다.


증류수 같은 시인아!

네 어찌 살 거냐고

점점 퇴색되어가는 시구(詩句)들,

이 땅에 너무 많은 잡초시인으로

가려진 민초(民草)여,


애당초 매명(賣名)매문(賣文)이나,

이름 몇 자 올리자고

지켜낸 파수꾼도 아닐 바에야

벌겋게 그을린 얼굴

구릿빛 살로 지켜내리

머언 나라에 가고 없는 이 시인아!






 웬 땀을 그리 많이

                 

비인 방구석에서 온종일

무슨 일로 그리 땀을 자초(自招)하나

사각(四角)의 정글 속에는

내내, 사이렌이 요란하네!

갈 곳 없는 골방 속에서

이유 있는 저녁노을


뭐냐, 뭐냐, 뭐냐, 뭐냐, 뭐냐,

도대체 뭐냐고,

오묘하고 불가해(不可解)하도다.

오늘 저녁노을은….

먹구름과 해의 변주로 인해 나는 늙어가도다.

한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해도

참을 수 없는 고요와, 고요가 던지는 의미는 숨 막히는 동굴(洞窟)안.


단순 하라! 단순 하라! 단순 하라! 단순 하라!

차라리 모두 단순 하라!







 결과는 쓴 웃음뿐


이제는 알겠다.

내가 얼마나 부끄럽게 살아왔는가를

내 웃음이 얼마나 공허했고 비굴했는지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이를 갈며 절치부심(切齒腐心)했는가를

떠나간 건 나만이 아니다

아무도 내 곁엔 없다

웃다 못해 허릴 움켜쥐고

파안대소(破顔大笑)했던 이웃들

연유도 없이 비웃던 인척들,

부질없고 부질없어라.

있을 때 잘 해줄 걸!

참회(慙悔)한들 소용없는

과거로, 과거로,

모든 건 흘러갔다.








 시험감독


헐렁하고 넉넉한 몸차림부터가

밝은 낮, 가볍고 즐거운 시험기간

잡념도 떨어내고

오직 무념(無念)의 멍청함으로

한 여름 파르라니 깎인 비구니의

머리위로 스치는 한 점 바람으로

창백해진 사위(四圍).


이런 날, 한 낮엔 해님도 졸고

하룻강아지도 늘어진 상팔자로

선에 빠진 낮잠

사악 삭, 연필 긋는 소리조차 즐거운

학기말 시험감독은 오로지 나의 것.












 하늘공원


지척(咫尺)에 둔지 20년도 넘었는데

버린 땅을

이제야 비로소 찾는다.

찬란히 부서지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억새풀들

차마 부끄러워

머얼리 흐르는 한강 물만 바라보네.


난지도, 난지섬, 난지도.

눈물의 매립지(埋立地)에

역겨운 냄새와 닳아지는 살들

씻은 듯이 살아진 넓은 벌판에

눈부시게 흔들리는 순은(純銀)의 파도

부끄러이 숙여 우거진

하늘공원 억새풀 섶으로 삼는다.










 매실 차 한 잔


한잔의 여유를 뜨겁게 마시면서

깊어만 가는 밖의 찬 공허(空虛)를 생각한다.

왜 이러 허무히 끝나는지

왜 이리 빨리 흘러오고

흘러가야하는 세월인지

흐려지는 회억(回憶)이

미처 뒤따르지 못하는구나!

오늘도 소슬한 저녁노을인데

흔들리는 불빛아래 호올로

입안으로 넘기는 향기로운

매실 차 한잔.














 삶의 무게


하루가 또 하루를 낳고, 죽이고

내일에 대한

혹은 어제에 대한

미련도 기대도 없는 걸로


좌우, 전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쫓기듯 피곤하게 밀려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먹고

선잠으로 다음 하루를 무겁게 맞이하는

늘 헤어진 그런 일상이다.


넝마처럼 헐고 헤어진

삼문(三文)인생으로

70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묻고 싶었다만,

“도대체 너는 누구냐, 무얼 하느냐?”









 피곤한 일상


그런 하루가 또 하루를 잉태(孕胎)한다든가

이젠 ‘내일’에 대한

혹은 ‘어제’에 대한 저항

미련도 기대도 없었던 걸로 치자.

전후좌우를 살필 겨를도 없지 않은가

쫓고 쫓기는 피곤한 일상(日常)

좁은 골목으로 돌아와 벗고, 먹고, 보고

뒤숭숭한 잠자리에서도

엎치락뒤치락, 선잠으로 엷어지는 일상이다.

늘 회의(懷疑)하다마는

구겨진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무심(無心)의 물가


청주 땅에 들어서면

밤늦게 마시는 소주(燒酒)가 달다.

깜박이는 불빛

붉은 포장마차를 에워싸고

서울, 충주, 진천,

객지(客地)에서 올라온

건장한 젊음들이 전혀 낯설지 않네.

술자랑에, 노래자랑도 어울리고

개천물 위에 뜬 달도

안주거리로 서로 다른 꿈을 건진다네.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지난겨울 

그 무렵 가스 연기는 그렇게도 매웠는지

북새통에 온 동네가

독한 난리를 치루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알 일도, 이유도 잊어버렸으나

오직 슬픔이 아닌 이유로도

눈자위가 짓물러 갔습니다.

 

희디 흰 여공(女工), 죽음의 슬픈 이야기가

흘러, 흘러 우리 귀에 들어왔을 때

누구보다도 나는 창백했습니다.

죽은 시인 기형도의

들먹거리는 매스컴 보기조차

나는 토할 것만 같았습니다.

가슴이 너무도 아프더이다.


순전히 1,200원짜리 서울 탁주 한 병이

내 살 이유를 상실케 했습니다.

기억과 기운은 쇠잔(衰殘)해지고,

더 살아갈 힘도 재미도 메말라갑니다.

오늘 하루도 시인의 탁주 사발(沙鉢)에

허기를 채운 체.

        


 독도(獨島)에 간다

                                  

검푸른 동해의 파도를 몰고

아직은 미명(微明)

이윽고 짙은 먹구름과 허옇게 이를 들어 낸

안개 사이로 천애(天涯)의 섬,

민족의 영토, 독도는 그렇게 고고(孤高)히

우리를 허락하였다.


270만년의 긴 산고(産苦) 끝에

아니 더 길고 깊은 470만년의 연륜(年輪)을

안으로, 안으로 일렁이며

왜 말이 없는 건가?

외로운 섬이여,

이젠 말하라 우산(于山)국의 내력을

육지에서 나무 사자를 배에 나눠 싣고 온

이사부와 조선조 바다의 영웅 안영복을.


하늘을 찌르는 국민의 함성과

철통같은 수비대원의 의연한 결의를

독도여!

이젠 철퇴를 내리리라

간교한 일본에게

영원무궁하게 독도는

우리 민족혼(民族魂)의 도장(道場)임을.


 화려한 고독

               

베란다에 핀 난(蘭) 몇 분(盆)

가을날, 따뜻한 햇살을

하루 종일 맞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두 따님은 미술학원과 외국 연수로

지긋한 여주인 마님은

성경공부로 서둘러 나갔고

숙취를 거느리지 못하는 가장도 출근해버린

텅 빈 집안에 출렁거리는 행복


남들은 저마다 속살거린다.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못 말려

간들거리며 웃는 하루

뿜어보는 날들이 더욱 화려히 간다.









 뉴욕에서 보내온 결혼사진

                          

웬일인지 더욱 슬프다, 이 깊은 밤은

“미셸.”

밝고 희망찬 두 젊은 신혼부부는

이역만리(異域萬里)끝에서

다정한 사진을 보내주었구나!


“왜 나만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느냐,

사랑하는 딸, 너는 더 아프겠지.”

서울의 “장임”

얼마나 더 시련을 주는지는 묻지 않으련다.

애비가 대신 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후의 술잔

눈물의 축배(祝杯)라면

눈물은 넘치고, 넘쳐

창조주에게 감읍, 감읍하고

남은 여생을 오로지 주(主)께 바치렵니다.

주여! 

저희 어린 딸에게 희망과 구원을 주시옵소서.







 쓸모없는 남자


그녀와 나는 어김없이 다툰다

이유가 없다

단 둘 뿐이기에 시간을 정하거나

누구의 눈치 볼 일도 없다

별다른 취미나, 생각나는 레저도 없기에

싸워야 금실이 좋아진다고 믿었던가

술에 절어야만 살맛이 나는

이 나이에는 무서울 게 없다.


소시민아파트단지 생활이 뭐가 불편하더냐

호적까지 떼어다가 박을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잠을 잘 때에도

늘 강남 쪽으로만 머리를 둔다 .


잘나가는 친구들이 산다는 ‘분당’을

노래로 엮어서 내게 흥얼거린다.









 제끼던 시대는 가버리고


쥐여 짜고, 또 쥐어짜도

흙탕인 머릿속은 더욱 갈증만 난다.

가슴을 치고 발버둥쳐도

어쩌지 못하는 찌든 오늘의 ‘나’

지금이 이렇다면 어제의 어제는

어디에 서 있었던가.

그렇게 기름지고, 사내답고

잘 나가던 계절(好時節)은 모두 날려 버렸다.

등은 굽고, 뒤 머리카락이 아예 없는

축 쳐진 뒷모습이

낡은 액자 속으로 떨리는 그림자를 흘릴 때

차라리 비웃음은

슬픈 독주잔(毒酒盞)에 타서

훌, 훌 마셔버리자꾸나.











 남는 나이 빼어먹기


남는 나이를 세어가기로 하였다.

곶감을 꽂이에서 한두 개씩 빼어먹듯이

빼어지고 비어내는 나이와 나이

 

그 사이 계곡(溪谷)에나 질펀하게 깔린

나의 종언이 서글프다거나 황량하다거나,

오히려 담담(淡淡)한 편이

더 타당(妥當)하게 느껴지나.


이제부턴 온몸으로 비워가고 있다.

가볍게 더 가볍게….

줄이고 빼어먹고, 더 없이 멸시당하면서도.


  











       Ⅱ 반추(反芻)


















 되새김질

            

태어날 때부터 머슴꾼이다.

늦가을 수 소라서 어깨가 더욱 휘어지도록

70여년을 일해 오면서 늙어가는 소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소.

태형(笞刑)으로 감으며

인생을 되새김질할 따름이다.

커다란 눈망울에 맺히는

높은 하늘 구름 한번 처다 보고

이런 굴곡(屈曲)의 인생이라 해도

그 이상을 감사하며, 그만큼 마음을 비우며

조금씩 먹고, 조심스레 생각하고

마지막이 먼 길을 바라서

멍에를 질 일이다.










 반추(反芻)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묵묵히 살다가

먹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이 되씹으며

마지막이 살 한 조각, 뼈 한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수 소의 숙명(宿命)이다.














 비음(鼻音)고(考)


수지부모 신체발부(身體髮膚) 라면서도

콧구멍 속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지럽고 미묘하다

어여쁜 미녀의 콧속이 어쩌면 저리 시커머냐

하릴없이 코만 큰 노인의 벌름거리는 코와

얌체처럼 삐져나온 코털

겹친 주름의 할머니 콧속이 의외로 맑디 말다


답답하다, 짜증난다, 미칠 지경이다.

어둡고 긴 터널 속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블랙 호올

오늘도 ‘콧구멍관찰’에 하루해가 쉬 넘어간다.

시장 안, 전철 안, 시외버스터미널

나른한 대합실의 오후, 대중식당

그 중에서도 성인 콜라텍이

제격임을 내밀히 알림.


염치없이 남대문짝 만하게 벌어진

콧속을 위한

특별 세미나가 필요하다.

특히 박 재능 시형의 늠름한 기세(氣勢)에

위압당한 하루가 온종일 심드렁하다.

그뿐이 아니다.

샤넬 향수냄새가 진동하는

뚜 마담의 비음(鼻音)은 비음(悲吟)인가

“내 원 참, 어쩌다 이런 마술에 걸려들었지?”

천하에 투명한

콧구멍대회 유치 참가자를 수소문함.























 어느 날 회장실의 독백


“그렇잖아도 안팎으로 괴로워서

신경이 곤두서는 마당에

다 늙은 할망구가

웬 잔소리가 이리 많으냐.

“어엉”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짓으로 나아갈 요량이면

나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야.

40년 동고동락(同居)도 소용 없다구, 알았나? 

알았으면 복창(復唱)

제기랄, 오늘 하루도 재수가 없어

목주름 살이나 챙겨라.

그 얼굴로 어딜 함부로 쯧쯧쯧”

혼잣말뿐이다. 

불쌍한 이여,

그대 이름은 남자.










 잠옷


도회의 어스름께는 특히 비감(悲感)하다고

몇 년 전에 지방신문 문화면에 올렸던 장소

신설동 로터리에서 부딪힌 황혼병

에드거 앨런 포우의 소설 주인공인가

내가 걸친 치렁치렁한 망토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아니 겨울잠을 위한 세레나데는

동해안에서 S대학 여 제자가

성의껏 붙여 온 선물이다.


두터운 촉감에 감겨 잠이 든다.

아늑한 인정에 

새삼스레 40년 師弟의 길을 헤아려 본다.

포근한 잠자리 안에서

나의 남은 여생을 위하여 오늘은 쉰다.










 보낸 세월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고향이 있다.

가슴속 깊이 그리움 사무치는 절절한 고향이

사람들도 마지막이 가까우면

어머니 젖줄 같은 고향을 애타게 그리나보다

나 또한 안온한 그 곳으로 가려 한다.


철없이 젊게 뛰놀던 날

그렇게나 떠돌던 대망(大望)과 좌절(挫折)

방황과 명분 없는 타협

그리고 비굴한 안주(安住)도

이제 헛웃음으로 흩날리며 가자꾸나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 해도

소리를 죽여 가만히 불러보자.


그곳엔 미루나무가 높이 빈 까치집에 걸리고

앞 냇가 엔 송사리 무리지어 노닐던 산골

익어가는 홍시처럼

뺨에 새빨갛게 스치던 바람

오순도순 소꿉놀이 동무들

그 위로 높이, 혹은 나지막하게

노니는 멧새들이 있었다.


모두들 어데로 갔는가?

시들어가는 살갗에 눈물도 메마른

이마의 골을 따라

거친 세월의 영욕(榮辱)이

한 여름 밤의 꿈으로

가슴을 에어낼 따름이다.

                        























 춘색(春色) - 1

             

우수에 내린 추위 경보라니

아랑곳 않는 자연의 의젓하심

언 땅을 비집고 내민 여린 풀꽃들

핏줄이 군실, 군실하다.

찢겨간 2월의 아픔으로 상처를 여미는

정가는 플랜카드처럼 어지럽게 나부낀다.

마음이 무거운 주부들의 시장바구니

어느새 잦아드는 계절의 기지개

물이 도는 가지와 삐죽 내민 새 순(筍)들의

수줍은 모습에 식어가는 시인의 저체온을.















 춘색(春色) - 2

                            

목화 씨앗

민들레 씨앗

도라지꽃, 풀벌레

온갖 마른 잡초들이 엉켜

황량한 벌판으로 바람 분다.


생명 있는 모든 걸 사랑해야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름도 없는 잡초들을 쓸며

그 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나는 어서, 어서 바람을 맞으러 나가야지.

                            











 늑대목도리와 여우벨트


도시의 어둠 속에

또 다시 저며 드는 고독

젊은 세대들은 추위에

목마르고 피곤해도 기다린다.

어디선가 그에게 걸어올까

까칠한 그림자를

그대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귀여운 여우의 어깨를 두르는

늑대 사내의 음침한 팔걸이를

자네 본 일이 있었던가!

늑대의 허리를 휘감은 여우 양(孃)의

보드라운 팔걸이 벨트를

오늘도 엄습하는 밤의 세레나데










 존재(存在)의 의미(意味)   


내가 있음으로 세상은 존재하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세상이 있음으로 내가 존재하고

세상이 없다면 나도 없다.


 









황당한 궤변(詭辯)이라고 욕하지 말라.

    내가 없으면 우리 모두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

 

 카페, 당선작 없음

 

오늘, 대학입시 접수 마감 날이다.

홍익대(弘大)앞 하늘은 뿌옇고

허옇게 얼굴이 뜬

남녀 학생 지원생들이

마치 수용소에서 방금 나오는

보호감치원생들처럼

멋쩍게 웃는다.


힘겹게 카페 문을 밀친다.

왜 하필 카페 이름이

‘당선작 없음’이더냐.














 기다미의 갈 까마귀


오호츠크 해협(海峽)을 떠다니는

북극의 유빙(遊氷)이

밤이 오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운다.

우는 소리가 백랍(白蠟)같은

싸늘한 불빛의 원인으로 인하여

매일 나는 유령(幽靈)이 된다.


으흣, 으흐흣

기다미(北見) 외곽에 떠다니는

갈 까마귀는 유심히 보았다.

이방인의 행객을.












 사태(沙汰) - 1


제29회 대종상(大鐘賞)심사위원 위촉되다

국산영화 19편을 심사하기 위해

첫날, 

<꼴찌에서 첫째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

<꿈>과

<그들도 우리처럼>에 이어서

<나의 사랑, 나의 新婦>를 보니

오후 5시 40분이다.

지친 몸으로 차를 몰고

금화터널을 넘어, 성산대교도 건너서

목동의 아파트 집으로 돌아오다.


완만한 피곤에 술 생각이 난다.

가족과 모처럼 단란한 식탁에서

담근 소주 한 컵을 쭈욱 들이켰다

밤 9시- TV-News에서

중동 걸프灣(Gulf)전쟁

종전(終戰)소식이 발표되다.






 사태(沙汰) - 2

                   

둘째 날도 방화(邦畵) 3편을 하루 내 보다.

<남부군>의 지리산 속을 지치도록 뒤지다가,

<내일은 비>에서 몹시 지루했다.

다시 <누가 龍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는

스피디한 정치영화로 기분을 전환했다.

이쯤이면 국산영화도 제법 수준급이라고

기분 좋게 말 할 수 있으려니

언제부터인가, 

나도 영화인이 되려고 마음먹었었지,

자연스런 연기와 배역

작은 소도구에서 무대장치까지 괜찮았었는데

내내. 

국민배우 안성기 만큼은 따를 방법이 없어

심기(心氣)가 불편했다.











 사태(沙汰) - 3

         

셋째 날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과 모멸을 감수해야 하는 전형적 여인상

두 번째 <독재소공화국>은

그 옛날, 젊은 날

캠핑친구인 故 이진수의 노역(老役)역할이

향수를 일깨워주기도 했어.


우리 여객기 KAL 참사를

재현하는 <마유미>에서

여류신인 김서라(金糬羅)는 정말 신선했다.

마지막 <물위를 걷는 여자>는 이미

서울 역 뒤 봉래극장에서

쓸쓸하게 본 적이 있어

일찌감치 시사실(試寫室)을

등 뒤에 두고 나왔다.

웬일로 이리 일찍 귀가했느냐는

가족들의 의아한 표정을 슬며시 웃어넘겼다.







 사태(沙汰) - 4

           

넷째 날의 심사대상은 3편

선우일란의 <밤으로 가는 긴 여로>와

광주시민의 항쟁을 엮은 <부활의 노래>

그리고 아이로니컬하게도

완고한 양반마을에서

양갈보가 되가는 애환을 엮은

<은마(銀馬)는 다시 오지 않는다>였다.

또 다시 그날의 아픔을 총성으로 엮는

피의 항쟁과 죽음을 새긴다는 건 고역이었다.

은마도 기대 이하였지만 어인일인지

후보작 다섯 편 속에 들어갔다.












 사태(沙汰) - 5


마지막 날엔 두 편 감상을 끝낸 뒤에

곧장 후보작, 감독, 남우, 여우(女優)

신인상 선거로 들어갔다.

<천국의 땅>에서의 나영희, 진유영의

열연(熱演)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뒤이은 소년가장(少年家長) 수기 당선작인

출품영화<혼자 도는 바람개비>도

눈물을 짜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때 아닌 영화 감상 풍년으로

엿새를 꼬박 보낸 내겐

허탈과 고무(鼓舞).

인생역전 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이

지워지지 않는데

두 가지 큰 사실은

여자 출연자들이 모두 홀딱 벗는다는 것과

남자 주인공들은 거의 운동권 축(軸)의

의식화 된 도피자들이라는 것이니


엿새 동안의 밀폐된 방황에서

필름 속으로 도망치고, 눈물짓고

분노하던 공간들이 어느덧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실로 실컷 보고, 웃고, 눈물짓고

생각하고 투표를 하였다.

“이젠 나도 늙었구나!”


자조(自嘲)섞인 한숨과 의욕저하에

게다가 시력 감퇴와 자기주장 포기

무력감(無力感)등이 

오버랩(Over Lab)되면서 서서히

두 해에 걸친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의

축 늘어진 초라한 행색을 지워 갔다.

사태(沙汰)는 맥없이 끝이 나다.


















 모노크롬의 고독(孤獨)

                      

오늘밤 또 만나야 되는 구나

부지런히 남겨야 한다.

할렐루야 늘 낮은 데로 임하심을 압니다.

낮은 데서 태어나시고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언제나 약간 모자랐다.

아쉬운 밤의 목마름을 위해

黑白모노크롬의 고독(孤獨)과

흘린 포도주 한 방울의 의미

마지막 가는 달에 아쉬움인가!


눈 대신 빗줄기가 하루 내 긋는

도시의 사선(斜線)

우린 부지런히 뛰었다

계절답지 않은

삶의 피곤을 제기며

늘 비어 있는 교회 본당 복도는

창백한 형광등이어서 더욱 슬펐던가!


작은 헛기침소리라도

어쩌지 못하는 공동(腔胴)을

흔들어주길 바라는 기도로

가자!

어데든 걷고, 걷는 속에

스치는 인연과 그림자 한 뼘에도

뜻은 깊게 새겨질 일이니

일일 일생(一日 一生)이어라.
























 기요토의 불


흩뿌리는 비

찬 밤 내내 호올로 켜져

마치 그 안에 어떤 애원(哀怨)이

애잔한 흐느낌이라도 있었음직한

내려다 뵈는

신사의 뜨락과 두 개의 등불이 

담긴 기요토(キヨト.京都)

그 며칠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 거냐.


처음에 보았을 땐, 조금은 역겨운 가슴으로

도대체 일본이라는 나라엔

신사와 참배객이 얼마나 되는 거냐?

연이나 고도(古都)엔 몇 집 걸러

사람의 원죄의식과 기구 (祈求)의

나약함을 여지없이 들먹여주는

찬비가 쉬일 사이 없이 내려 쓸쓸한 밤을

더욱 서글프게 훑어 내리는

거기에 왜 내가 있어야하는지

 

오늘만큼은 신사(神社) 쪽으로는

내려다보지 말자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끌려 무거운 커튼을 젖혀

눈으로 바라다보는 그곳에

슬픈 불은 꺼져 있었다.

Q여, 다시 그려보는 머언 서울의 밤에

행여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모아

바라보는 그곳에

일본의 ‘불’이 켜 있지 않았으니

켜있지 않음은 ‘켜 있음의 기다림’ 보다

더 크게 한구석을 헐어내 여지없이

내동댕이쳐 버렸다.

언제쯤이나 볼 수 있으려나,


아직 켜있지 않음의 고통보다 더 깊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져가는

애잔한 이국(異國)의 밤 에레지여!

자조(自嘲)의 아픔보다 깊은 설렘의 종교

짙고 푸른 마성(魔性) 의 최면(催眠)이여!

깅몽도(キンモンド) 호텔 512호 창가로 오라.  










 무정한 주인을 위로 말라


그래, 무려 11년 동안이나

말없이 주인을 모셔온 너를

그렇게나 무정하게 떠나보내다니

난 사람도 아니로구나.


‘서울 3크 쏘나타 2575’

을미(乙未)년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내 집 앞에서

말도 없이 끌려 나가는 너

얼마나 원망어린 표정이었던지

가슴이 아리고 바로 설 수 없었다.


폐차장(廢車場)이란 무서운 장지(葬地)로

속으로만 울며, 겉으로는 울지도 못하던

너는 가고 말았구나!

‘새나라’에서 ‘르망’으로 다시

‘쏘나타’를 만나게 되어

젊은 날의 나는

더할 나위없는

행복을 구가(謳歌)하게 되었어라


곱디곱게 보내온, 

11년의 네 몸값이

단돈 7만원이라니 어이가 없구나.

이제 네가 떠난 빈 자리에

석양녘 네 주인은 호올로

운다.


그래,

네 뒤를 이어 새로 입양(入養)한 사촌

힘찬 모습의 ‘서울 03 투산 4526’이

우리 가족들 가운데서

마음에 들고 귀여움을 받을 때까지

천당에서나마 지켜주려무나.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온

청정(淸淨)한 시인이어라


하얀 눈밭 같은 머리를 흩날리며

산과 들판

교단(敎壇)과 시밭(文壇)을 뛰여 다니시던

우리들의 스승

원영동 시백(詩伯)께선

지금 어디에 계신가?

게으름을 질타하고

자연보호 파숫꾼을 자처(自處)하시던

이 시대의 진정한 ‘지킴이’를

가만히 불러 봅니다.

회장님은 지금 어디에서 우리를 지켜보실까

내 개인 전시에 주신 글, 곳곳에 스민 정감(情感)


거창한 예술의 산맥보다는

지극히 작은 산의

콧수염, 육담(肉談)을 더 사랑한다.

뒤뚱 뒤뚱 迷夢의 아침을 달리면서

下山酒를 꿈꾸는 그를 더욱 사랑한다.

그는 소박하고 텁텁하고 촌놈 같은 차림이다.

어리어리한 무색의 인간이다.


나를 옆에 끼고 산자락으로

수리산, 병목안, 개장집으로 다니던

신선(神仙)같은 그 분은 어디에 계신가?

한국문인산악회를 만들어 우리를 이끌어

관악산, 청계산,  북한산,도봉산, 소요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 수리산, 검단산

명지산, 유명산, 영암 월출산, 한라산

태백산, 설악산, 백두산

물과 산이 있는 곳이라

어디에고 빠지지 않고 앞장서며

나무를 가꾸고 始山祭를 게을리 않던

골짝엔 오늘도 다그치시니

우리들은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깊은 山河 어디에고

백발을 휘날릴 회장님의

넋을 뿌리고 싶습니다.

이 땅 문인들의 영원한 ‘산꾼’

아아! 

아버지 같던 푸근한 날들이여,

 

가슴속으론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부디 九天을 돌며 강녕하소서




































시리고 시린 날


















 샛노란 은행잎들 떨어져 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협회 텅 빈 방

커다란 창문을

샛노란 은행잎들이 가득히 메웠다.

이 가을은 뭐가 그리 황급했는지

재촉하며 지나가 버렸고

병든 몸과 찌들어가는 우리 마음을

가득히 물들여 놓았던

은행나무들 줄지어 늘어선 거리에는

도무지 진실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머얼리 남산(南山)성곽을 뒤에 두르고

장충단을 맴돌며

나를 내려 보는 잎

지금 잎들은 무슨 마음일까?

어제, 오늘 바람을 몰고 내려온 비가

모두 쓸어가고 마는구나!

슬픔이 다시 나를 에여낸다.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넘치는 강줄기처럼

그리운 이가 그리워지기 전에

나는 흐르네,

흘러야 하네!

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인가

까칠한 낙엽으로 메말라가는 심성(心性)으로

이 해가 저물면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병든 잎새처럼

이 마음도 시들어가고

그리운 이여!

두고 온 고향도 없지만

괜스레 그려보다 마는 뒷산과

긴 들판과 맞닿은 공활(空豁)한 그곳

흩어지고 마는 바람으로 가리.











 매연(煤煙)과 구토(嘔吐)

                          

매연, 

지난겨울 그 煙氣는 그렇게도 매웠는지

온 동네가 독한 난리를 치렀습니다.

이제는 알 일도, 이유도 잊어버렸으나

오직 슬픔이 아닌 이유로도

눈자위가 짓물러 갑니다.


죽음과 구토,

희디 흰 女工의 슬픈 이야기가

흘러, 흘러 우리 귀에 들어왔을 때

누구보다도 나는 창백해졌습니다.

죽은 시인 기형도를

들먹거리는 매스컴조차 메스꺼워

나는 토할 것만 같았습니다.











 418호실


2005년 7월 21일 子正

며칠째 깊고 매우 쓸쓸한 밤이다.

휴스턴의 푸른 밤은 지금

서울로 치면 몇 시쯤이기에

온통 고즈넉하고

사위(四圍)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인가!


이젠 내 나이 녹슬 대로 녹슬고

삐걱대는 수레바퀴 같이

힘겹게 돌고, 돌아가는

인생 칠십, 고비길인데

아무런 집념도 욕심의 허망함도 부질없는

지구의 반대편 남쪽 무의미한 도시


3만 한국인의 심심함을

심심치 않게 남기는 밤

사방을 눈 씻고 보아도 이렇다할 산하나 없고 

오로지 싱겁게 평탄한 휴스턴

이런 우주도시에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찾아왔고

무슨 꿈으로 살아가는 걸까?

우리 모든 나이 녹슬어 가는데



 ‘르네’가 ‘라이너’로 바뀐 이유

       

14살이나 年上인 그녀에 대한 애정이 

시인 릴케의 삶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같은 정신적 지주(支柱)였던

그래서 그의 권유를 따라 이름까지 고친 걸

비에 젖는 파리 쟝의 낭만,

샹젤리제 젖은 가로(街路)를 따라

묻어 오르는 방황과 힘겨운 나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서한(書翰),

1929년에 출간된 서한집으로서

시인 프란츠 카프스에게

보내온 10통 남짓한 편지 묶음이

피로한 시인의 굴곡진 주름을 따라 고인다.

장미의 가시에 찔려

결국 죽어가야 했던 릴케여!

오귀스트 르네 로댕의 구박받던 비서로서

파리에서 한시대의 화가들과 교류했던

슬픈 문객(文客)의 고달픈 삶이여






 옛날이여 오라,

-카츄사를 그린다

                                           오늘 백야(白夜)에

12월의 묵은 달력을 떼어내며

끝도 없는 자작나무 숲 속으로 달려간다.

네프류도프를 사랑한 죄 값(罪)으로

황량한 시베리아의 유형지(流刑地)로

노예처럼 이끌려가던 카츄사처럼.

새 날이여!

제야(除夜)의 쇠 종소리가

머얼리서 울려오듯

“가라 묵은 날들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남항(南港) 


지금 막 극지(極地)의 원양(遠洋)에서

돌아 온 냄새를 풍기며

Q씨는 큰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포켓에서 금시라도 꺼내 줄 것 같은

남국의 조개, 소라며 기이한

돌, 별, 산호, 조개껍질

그의 몸에서 풍기는 담배 진 냄새,

넒은 이마엔

무량한 바다의 이미지가 살아 있고

꾸역꾸역 갈매기의 합창도 들려온다.

바다 밑 구석을 다 파헤친 듯한 신비의 눈

뒤 개울에서 자위를 하고 온

완만한 피로감에 덮여

나는 그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가슴을 싸 여며도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쿵쿵대는 심장의 울림

언제였던가? 

南港 여인숙에서의 새우잠을 떠올린다.

내가 바다를 안건 그때 뿐,

굳은 살 박힌 손아귀의 믿음과

끝이 없는 심해로 가라앉는 현기증에

얼굴은 아마 파랗게 질렸을 게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몽롱함 속에서 언니의 젖을 만지고 있었다.

쑥불이 그리는 현란한 세계

찬별이 총총하고 과일, 수수 나락도

구름이 일고, 샛바람 일더니

아아! 그리운 냄새,

Q씨의 살 냄새를 싣고 온

바람이 있었다.

내게만 보이는 그이의 커다란 눈이

가까이 웃고 있었다.
















 부 채 -1

                         

조선(朝鮮)여인의

가는 허리께에 달린

문방사우(文房四友)의 운치(韻致)

언뜻 매난국죽(梅蘭菊竹)

먹물을 따라

학(雲鶴)이 날아드는 듯싶다.


풍유(風流)따라 흔들리는

사대부(士大夫)의 손놀림에

울고 웃으며

비로소 땀을 씻는 너












 조선의 부채 - 합죽선(合竹扇)

                     

비애(悲哀)의 미(美)가 서린

조선의 부채는

달이 뜨고 해가 져도

몽롱한 꿈을 꾸며


가는 여인의

허리 어디쯤

임리(淋漓)히 번져가는 소리와

묵향(墨線)에 젖는다.


문득 십장생(十長生)과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따라

천년의 두루미(雲鶴)가

훨, 훨 날아드는 듯싶다.











 M에서 M으로

                       

미니(Mini)에서 미디(Midi)를 거쳐

맥스(Max)의 시대로

실로 오랜 세월동안 어지럽고

신나는 여정(旅程)이었다.

뭇 여성들의 탄성(歎聲)과 비애(悲哀)

용출하는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드디어 뒤엉킨 체 여행이 끝맺으려는가!

선사(Pre-historic Age)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질펀한 애원(哀怨)과

몸짓이 담긴 파노라마로 스쳐간다.

그리워, 그리워도 돌이킬 수 없는 날을

얽히고, 얽힌 얼굴과 일그러진 모습들이

자꾸만 보고 싶다.


그레타 가르보, 그리아 가슨

실바나 망가노, 소피아 로렌

신음이 배인 마릴린 몬로. 브리짓 바르도

섹시 여배우에서

청순가련(可憐)형에 이르기 까지

여체는 모든 남성들의 우상(偶像)이었으니

정신이 혼미하도록 바싹 쳐올린 미니여 안녕!

무도회의 마돈나처럼

우아한 미희(美姬)의 치렁, 치렁한 맥스까지.



 소생(蘇生)의 계절


다시 꽃망울, 망울이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시(詩)가 보인다.

꽃가루 휘날리는 계절을 타는가

한 열흘 호되게 몸살을 앓았다.

한밤에도 높은 열로

얕은 잠에 몹시 뒤척이더니

뒤척이는 소리, 주름살 넘어, 넘어마다

고통의 시와 얼룩들이 고여 있다.

제멋대로 살아서 꿈속으로만

이어주는 단어(單語)들,

애써 일어나 적으려고 하지만

앓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애태우고 꿈속으로 잠들고, 깨우고

비몽사몽(非夢似夢)에서 끼적거리나

물살로 일렁거리며

머얼리 지워져 간다.








 비내리는 장충단(獎忠壇)을 바라며

  

넓은 유리창을 두고

五色의 색지(色紙)를 접는다.

물안개 스치듯

파노라마로 다가오는 南山의 줄기,

작고한 가수 배호의

구슬픈 화음(和音)이 울려 퍼져 온다.

먼 듯 가까이 허스키로 펼쳐오는 거리와 보도

창밖으로 오가는

숱한 차량들의 행진을 보고 있다 문득

저 멀리 이국땅(異國)

뉴욕은 지금 몇 시일까?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흘러와, 스치는가!

인생 끝물의 년 치에

비로소 잦아드는 온정(溫情)

따사로운 핏줄이라도 너무 먼

눅눅한 수채화 한 폭에 불과하다.

어둡고 싸늘하였던 북풍(北風)도 가버리고

겨울도 어느 결엔가 지워지고 있다.


참말이다 

나는 다시 살아

늙고 메마른 가슴에 물기를 돌리고 싶다

어느 먼 땅에 서 있을지라도

그리워하며 이웃간에 온기를 모우고 싶다.

봄의 서기(瑞氣)가 살아오는 때문이 아니다

오라 어서,

이 계절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끌며

아무라도 좋다

다시 걸어가려는

피곤한 우리 인생의 도정(道程)에






















 아기 고양이

 

오늘 아침에서야 알았다

고양이새끼가 담장 밑에서

언제부터 그리 슬피 울어댔는지

온종일 울고, 밤새워 울고

또 오늘 아침에도 울고 있었는지

아내가 들었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엊그제 어미 고양이가 새끼 한 마리와

집 뒤에서 죽었다는 걸

그래서 어린 검정얼룩 고양이 새끼는

그렇게 울어대는구나!

나머지 두 마리의 형제들이 그리워 우는구나

배도 곯아 우는구나

왜 죽었을까

기운이 빠져 살 수가 없었는가?

어미 없는 불쌍한 새끼고양이를

옆집 아저씨가 돌보아주려

시골집으로 데려 갔다는데

어쩌다가 다친 너만 처졌구나.


“어데 있어요? 엄마, 엄마~ 미워”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애처로이 울다 지친

새끼 고양이의 피울음이 못내 가슴을 치누나!

그래, 네 엄마는 너만 놓아두고

다시 올수 없는 머언 나라로 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를 버리고

무정(無情)스레 떠나갔다.

어떻게 두 눈을 감았을까?

산고(産苦)에 지쳤나

깡마르고 힘겨워하던 어미 고양이,

사람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제 새끼를 보호하려던

母性의 모습이 눈에 서언하구나

가엾고 불쌍한 젖먹이 고양이야.


엄마 품이 그리워, 밤이 무서워

살아진 형제들과의 장난질도 그리워

오늘밤 행여 꿈속에서라도 찾아올거나

저세상 간 어미가

허나 이제 너는 혼자 자야 한다.

혼자 먹이를 구하고

혼자 잠자리와 너를 지켜야 한다

어지럽고 무서운 세상을 견뎌가야 된다

울지만 말고 굳게 헤쳐 나가야만 한다

아아~ 

힘없는 검정고양이 새끼는 뒷다리를 절며

이 아침 풀숲 이슬을 적시며

쓸쓸히 어데로 가는 거냐?




 드디어 ‘넘’을 잡았다


그날도, 종로 5가 지하도 전철역

늘 번잡한 그 구석에서도 하필이면

공중변소 입구에서

느슨한 허리춤을 추스르며 나오는

그렇게나 만나야했던

그‘넘’을 마주 부닥치다니


놀란 나머지 그냥 피해줄까 말까 싶었지만

몸이 굳어 어찌할 수가 없었네

‘넘’이 내게 끼쳐준 피해는

이루 말로는 다 할 수 없다마는

얼굴이 쪼글해져 반쪽이고

약간 술기까지 풍기는 初老의 영감

저도 놀란 듯

멋쩍게 웃음을 흘리는

상판대기에 가래침을 카악~

뱉어주겠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쩌자고 싱겁게

피식, 웃고 말았던가.


“오랜만이야.” 


제법 여유롭게

그렇게 그 ‘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유들유들하게 사라지고 있었다만

휘청거리는 뒷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이래선 안 되는데, 이번에 놓치면

정말 큰 일 나는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찬스를 놓치고 있었다.

오늘도 유령 같은 지하도 그 화장실엔

누렁 이빨의 그 ‘넘’이 나를 비웃고 서 있다.




















 충격은 충격을 낳고


IMPACT 99

만취한 밤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원수였다.

마신 술이 또 술을 마셔댄다

1차에서 화주(火酒)로 자족해야 했음에도

2차에선 스멀스멀 목구멍을 돌아서

불행을 몇 번 예고해주었는데도

풀린 눈과 말리는 혓바닥과

빗소리는 “왜 더 마셔, 더 들어”로 들렸던가!

3차는 돈암 시장 안 포장마차였던가.

더 이상은 생각나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다

260만원 거금(巨金)이 날아갔으니


택시를 두 번 갈아타고

어데서 잃어버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새벽 1시경, 동선동에서 목동아파트단지로

집안에 들어서서는 거의 인사불성

아내와 희희낙락거리면서도

아랫바지에 넣은 거금

수표 15장은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건 전셋돈이었다

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징벌(懲罰)이다.


 시리고 시린 날 


사람들은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고향을 그린다

날 낳으시고, 품어준 그 곳으로 가고자한다.

젊은 날, 그렇게나 떠돌던

야망(野望)과 좌절(挫折), 방황…

이제는 모든 걸 헛웃음으로 날리며 돌아가자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다 해도

소리죽여 불러 본다.


어…머어…니이…

나의 살던 고향엔

높은 미루나무에 까치집이 걸려 솟고

앞 냇가엔 송사리 떼를 지어 노니는

야트막한 산골

빨간 뺨에 스치던 봄바람

혹은 한여름 땡볕

높이 혹은 낮게 노니는 텃새, 멧새들

어깨동무들은 어데로 살아졌는가?

이젠 시들어 눈물도 마른 이마에 골을 따라

거친 세월의 영욕(榮辱)이 흐를 따름이다.






 영산(靈山)

                 

2004년 정월 13일, 해발 920미터 정상에

오르고 또 오른 이유는

민족의 영산위에서

제천(祭天)의식을 위함이다.

태백산 천제단 앞에서

단군숭배와 국난극복을 빌었던

그날들을 되짚어봄이었다.


강신(降神), 참신(參神), 주유, 고천(告天),

송신(送神), 소지(燒紙)의 순서로

우리 문인 산꾼들은 강추위 속에서도

바람을 맞으며 제단에 빌었다.

백설(白雪)의 운해(雲海)와

태평양을 힘차게 조망(眺望)하며

겸허히 하산 길을 밟았다.










 만보계


가을을 몸으로 맞으려 나간다.

한걸음 또 한 걸음씩

짙은 가을색이

두 뺨과 목을 어루만진다.

나는 어제도 나였고

내일도 나이겠지만

오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정신 놓고 다가가고 있다

조금씩 줄이려고, 서서히 무너진다.


아무런 생각도 말고

열심히 걷자

짙은 가을이 눈앞에서 웃고

탐스런 감의 육질(肉質)만큼이나

투명한 가을의 삶을

혼자만 누리자꾸나!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둘, 셋, 넷….

우린 하릴없이 낙엽처럼 쌓인다.





 단노(だんの)호

                             

89년 8월 21일, 그날은

어찌할 수도 없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세도나이까이(せどないがい)의 검은 밤바다

부관(釜關) 연락선 단노(だんの)호 안에서

주위에 떠가는 어선들과 섬들을 바라본다.

선창(船窓) 밖으로 밀려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길이 9,8킬로미터

20년 설계하여 10년의 공사기간이라니

2층 조교(弔橋)를 까마득하게 올려다보면서

찝찔한 밤바다 바람에 입술을 빨았다.


켰다, 껐다 머얼리 쏘아 보내는 전광 싸인

아직도 ‘현해탄은 알고 있을까’

짓밟히던 그날의 학병(學兵)으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는 정신대(挺身隊)로

아오지(あおぎ)탄광촌으로… 붙들러 가서


“어머니이~ 보고 싶어요”

“아버지이~ 배가 고파요”

갱구(坑口)벽에 

애처롭게 써 갈긴 여린 조선의 아들들

윤심덕과 김수일이

얼싸안고 뛰어내린 현해탄 밤

야간항해의 그날 밤은 유달리 무더웠다

구름 속에 가둬놓은 달빛을 너는 보았는가?


일본제국(にほん)의 

내해(內海)는 왜 이리 애절한가

세고비아의 기이타 현(弦)은 멀수록 애잔한데

무너질 듯 초롱초롱한 별무리를 따라

끝없는 나라로 떠간다.

알고도 알 수 없는 나라 사람들과

스시마(すしま)해협(海峽) 

드높은 파고(波高)속에서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라는 긴 섬나라를 되새기기 위해

다시 찾으며 깊이 새긴다.














 현해탄은 알고 있었나


세도나이까이(內海)를 지나

기절하도록 풍광이 명료한

섬과 바다를 사이에 끼고

이틀 동안이나 갔고

이틀 동안이나 돌아서 왔다


88올림피아로 찾고

단노로 되돌아올 때의

기분이 달떠있듯이

나고야 박람회장에서

온갖 것을 보고 치르면서

나는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떠나간다, 머얼리

1억 1,700만 명의 섬나라

377,703평방미터의 긴 넓이

4개의 큰 섬과

4000여개의 작은 섬으로 얽힌

온대성 사계절의 이 나라는

2차 세계대전을 촉발(促發)하고도, 잊고

이젠 옌화와 간계(奸計)로 세계를 휘감는다.


우리에겐 뼈아픈 군화(軍靴)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국(倭國)일 따름이다

엄청난 오사카 성과

나고야 이후, 잦은 통과가 있긴 하지만

도시의 뒷골목에서 풍정(風情)어린 술맛도

스쳐지는 추억으로 즐기다.
























 한난(寒蘭)


오늘은 좀 춥다

지용의 난(蘭)만큼 춥다

스웨터를 걸친 여인들의 입술도 춥다

내일은 더 기온이 내려갈 모양인데도

날렵한 걸음과 입술이 반짝인다.


일찌감치 들어온 집안에는

빈 바람만이 돌아다니고

모처럼 한가로운 책상과

빈집 베란다의 난초들이

자유를 만끽(滿喫)한다.



경제적인 고독을 즐기려면

올 겨울에는 오래 오래

추어주어야겠다

별일 없으면 좋겠다.








 공휴일에


그냥 쉰다.

무사, 무념으로

껍데기로 남을 육신 따위야 일러 무엇하리!

높고 푸르른 하늘 위에 조는 해님


보시한 등불이 일어난다.

석가모니나, 나사렛 예수도

공자나 순자도

모든 성현들도, 이날만큼은

짐짓 모른 체 하시려니

오늘 하루쯤은 마냥 눕고 보자.














 동강(東江)은


하염없이 느리게 아주 느릿하게

돌고 돌아 어디로 가라는 뜻인가?

짙푸르다 못해 슬픈 애조(哀調)로

오늘도, 내일도 흐느끼는 동강(東江)은

대답하여라.  너, 이젠…


우리가 믿고 지켜보는 뜻은

지금 우리가 새기고 있는 것은

텃새들이 우짖는 정겨운 거리와

향내 가득한 숲 속

강서, 양천에 사는 감사의 날들이다.

개화산, 용왕산, 칼산 정기를 받고

휘감는 한강의 젖줄로

복된 이 고장

이 땅의 주인으로서


이제 만나는 우리의 신문은

지나온 날과 앞으로 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을 증언하는

우리와 자손만의 삶과 자질(資質)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고 맡기는 뜻은

오늘이 비록 힘들고 고될지라도

너로 인하여 ‘내일’이 맑고 밝다는 것이다.

없는 자의 힘이 되어주며

약한 자의 머슴꾼이 되고

이 고장의 파수꾼으로서

눈과 입이 될 것을

자청하며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 하나가 되고자하는

밝고, 맑고, 열린

신문으로 내일을 보라

갈수록 새롭고, 알차게 펼쳐라

날카로운 붓끝으로

가식(假飾)없이 정론(正論)을 펴라


가려는 곳이

끝도 없이 멀고

형극(荊棘)과 험난할지라도

네가 있기에 믿고 맡기며

함께 손을 잡고 넘는 희망찬 길임을










 버린 세월   


생존하는 모든 것들에겐 고향이 있다.

사람들도 마지막이 가까움을 느끼면

고향을 그린다.

날 낳으시고 품어준 그 곳으로 가고자 한다.

젊은 날, 그렇게나 떠돌던 야망(野望)과 좌절

방황과 안주(安住)

이제는 모두 헛웃음으로 날리며 돌아가자

돌아갈 고향이 없다 해도 소리죽여 불러본다

고향엔 미루나무 까치집에 걸려 솟고

냇가엔 송사리 떼를 지어 노니는 산골

빨간 뺨에 스치던 봄바람, 한여름 땡볕

그늘 밑에 오순도순 소꿉놀이 동무들

그 위로 높이 혹은 낮게 노니는 멧새들

모두 어데로 떠났는가?

마른 살갗이 시들어 눈물도 메마른 이마에

골을 따라 거친 세월의 영욕(榮辱)이

가슴을 에일 따름이다.







 망중한(忙中閑)


내가 하고 싶은 건

필타 달린 담배를 길게 물고

비스듬히 누워 시와 

길쭉한 그림을 생각하는 일들이다.

간혹 생각이 맞아 떨어지면

코를 찡긋 울려 보기도 하고

더북한 머리를 다디 가는 손가락으로

한 줌 쥐어 북새여 보며

재를 떨지 않고

언제까지 견디나 내기하는 것뿐이다.

오수가 나른히 내려앉는 시간

남들은 서둘러 진홍 넥타이에 어울리게

빨간 매니큐어 발톱을

스피스에게 핥기 우는데

호수가 건네 보이는 테라스보다 앞 시궁창에

비둘기 내려 시린 발목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짓을 지켜보는 하숙방

자욱한 연기와 고릿한 냄새.

그리고 명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나의 조그만 애인의

목을 쓰다듬을 생각을 해도

누가 뭐랄 세금독촉장이 없다.



 해설(解設)

시인의식과 장인(匠人)의식의 미학

                          - 장윤우의 詩 -


장윤익

(문학평론가. 경주대학교 교수, 前총장)



 1. 시인의식과 장인의식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예술정신이다. 장윤우(張潤于)의 시는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이 오랜 산고(産苦) 끝에 다시 만나서 형상화된 작품들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도주보》와 《학원》, 학생시집 『사인부락(四人部落』등에 발표한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천부적인 예술가의 기질로 주목을 받았던 학생시인이었다. 그는 그 후에도 끊임없이 많은 시를 창작하여 12권의 시집을 上梓하였으며 시 애호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장윤우의 본격적인 시의 출발은 1963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작인 『겨울 東洋畵』라고 하는 말이 옳을 것이다. 시인 자신을 비롯한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장윤우의 시 창작을 「겨울 東洋畵」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바탕이 되어 전쟁과 허무, 생활과 조형이 오버랩 되거나 시인으로서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 활동으로 인식했다.


 동양화는 동양적인 토착정서를 기반으로 해서 화륙법(畵六法)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정서에 가장 가깝고, 허무와 여백이 깃든 무위자연의 세계를 묘사하여 유현(幽玄)한 감동으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사군자(四君子)의 정을 담은 그림이다. 여기에 덧붙인 ‘겨울’은 그 정적인 요소를 더욱 깊게 하는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가 나타낸 시적 효과를 한층 더 고조시켜 「겨울 東洋畵」의 시적 분위기를 살려낸 것이다.


 이러한 장윤우의 예술적 기질은 ‘어느 분야를 기반으로 해서 예술의 미학을 전개할 것인가’하는 시와 그림의 갈림길에서 조형의 세계를 바탕의 예술로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은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윤우는 미술을 전공함으로써 시 예술의 폭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은 동일하다. 장윤우 시인은 시를 통한 동양적 정서와 조형, 생활과 허무의 만남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장윤우의 시는 이러한 종합예술의 미학으로 시작한다. 그는 시가 대중과 동떨어져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선전문구로 타락해서도 안 되며, ‘구조물의 형상’이 생활의 일부로 되는 ‘오자인생(誤字人生)’의 삶을 장인의식으로 시적 형상화를 시도한 시의 세계를 전개했다. 그의 시는 이와 같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다른 시인들과의 구별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2. 동양적 정서와 조형기법


 1) 동양적 정서와 기법


        화롯불 놓고

        천년이 

        조용히 흘러간다.


        九霞山 붓에서

        玉같이 구슬려 나오는

        四君子의 情에

        겨울밤이 화안히 핀다 .


        月田 선생께서

        이르기를 

        〈책을 萬卷 읽으라〉

        평생에 가슴 속에 심고

        畵六法에 앞서

        마음이 淨해야지

        心과 身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모두 형통하다

-「겨울 東洋畵」1,2연 -


 장윤우는 동양적 정신을 소중히 여긴다. 정적(靜寂) 속에서 정결한 마음으로 붓을 드는 예술의 경지를 그는 시인의식으로 받아들인다. “玉같이 구슬려 나오는/ 四君子의 情에/ 겨울밤이 화안히 피는”것을 그는 천년이 흘러간 동양의 정신과 동양화의 기법으로 인식한다. “心 과 身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모두 형통하다”고 하는 시행들은 예술을 대하는 이 시인의 장인정신의 진지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인의식을 화육법의 기법으로 그려낼 때, 고적(孤寂)은 예술창조의 기본이 된다. 여기에서 ‘겨울 동양화’는 “따끈한 정종”과 “수꿩”의 소박한 이미지와 조화되어 무욕(無慾)으로 이어지는 한편의 시로 태어난다. 장윤우는 여백과 허정(虛靜)을 이 시의 정서로 삼으면서도 기법에 있어서는 긴장의 고삐를 바싹 조이고 있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동양적 정서와 한편으로는 긴장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기법의 참신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엉킨 나무가 綠色의 繪畫를

        던지고 있다.

        ……(중략)…… 

        숨 가쁜 씨앗들은 外界를 驚異의

        눈으로 얘기 주고받을 것이다.  

-〈試作〉중에서-  



        이 밤

        풍경소리 호올로 높고 슬프기만 한데

        우러러 

        밤서리와 별빛을 이고

        저 머나먼 곳

        永劫의 빛을 바라고 나는 가자

-「산수도」에서- 



「試作」과 「산수도」는 시인의 창작의도가 동양적 정서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녹색의 회화는 서양화와 더 가까울 수도 있으나 “엉킨 나무”와 “숨 가쁜 씨앗들이 外界를 驚異의 눈으로/ 얘기를 주고받는” 시적 분위기는 역시 자연에 동화되는 동양적 정서에서 나온 기법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이 정적(靜寂)의 경이로움으로 승화한 시학이다. 장윤우 시인은 시가 형상화되는 과정의 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창작의 기법으로 사용한다.


 ‘산수도’는 여백과 여유가 있는 그림이다. 산수는 영겁의 빛을 바라는 동양적 정서의 대상이 되어 동양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요즈음은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국화라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다.


 “이 밤/ 우러러”와 “밤서리의 별빛을 이고” 사이에는 여백과 여유가 있고, “저 마나먼 곳/ 永劫의 빛을 바라고 나는 가자” 사이에는 무한대의 공간적 거리를 가진 여백이 있다. 이것은 동양화만이 가지고 있는 기법의 특성이다. 장윤우의 시인의식은 이러한 동양적 정서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시와 조형의 만남


 장윤우 시인의 장인의식은 시와 조형의 만남을 통해서 승화되고 있다. 조형은 서양적인 양식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동양적인 조형 양식도 예술의 최고 경지로 작품화되어 우리의 문화적 유물로 남아 있다. 석공예, 목공예, 섬유공예, 금속공예를 막론하고 우리의 조형 공예가들은 장인(匠人)정신에 몰두한 예술의식으로 작품을 창작하여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공예를 전공하고 있는 장윤우 시인은 공예와 시의 만남을 시 공예전을 통해서 몇 차례 시도한 적이 있다. 이것은 시와 조형의 만남을 통해서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의미도 된다.

「쇠 젓가락에 대한 斷見」도 그 중 하나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조형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긴요한 용구

        절묘한 장단은 타악기의 몫을 넘고

        단구(短軀) 두 개로서

        온몸을 휘감는 짜릿함

        식음의 자족(自足)함은

        역사의 증인이려나.

        공작인(Homo Fabel)으로서

        영구 불멸한 너와의 동행을 감사한다.

-「쇠 젓가락에 대한 斷見」의 전반부 -

 

 조형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긴요한 용구인 ‘쇠 젓가락’을 공작인으로서 영구 불멸의 동행을 감사하는 정신은 역시 장인정신이다. 금속 공예품은 인간의 생활과도 밀접해 있지만 장식용구로도 사용되어 왔다. 금관과 철은 바로 고대국가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장윤우 시인은 “식음의 자족(自足)함을 역사의 증인”으로 삼아, “단구(短軀) 두 개로서 온몸을 휘감는 짜릿함”으로 시화한다. “가장 슬플 때 가장 사랑스럽고/ 너를 두드림으로서 울고 웃는” 것을 인간들에게 보내는 것은 시와 조형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손가락이 떨고 있는” 예술의 감동으로 나타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彫塑室」도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철근이 엉겨 붙은 구조물/ 페치카 위엔 빨간 과일이/ 빛을 내”는 조형은 금속공예와 회화가 시로 승화되는 아름다움의 빛이다. 시와 조소가 만나는 “잉태를 위한 時空의 정지”는 시가 태어나는 강렬한 감정의 “마치엘 熔融”이 된다. 이렇게 장윤우의 시세계는 시와 조소의 만남을 통해서 그 영역을 확대해간 것이다.


 시「마르셀․뿌르스트」는 시와 조형의 만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칩거하며 일체와의 인연을 끊고서야/ 드디어 남겨놓고 간 불후의 명작”에서 시와 소설의 만남을 시적 형상화로 시도한 것은 예술의 최고 경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감성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술적 승화는 장르를 초월하여 작품화 된다.


 3. 전쟁의 현실과 생활의 시학


 1)전쟁과 현실


        내가, 형제가

        말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戰場

        山野는 벙커가 되고

        벌집이 되고

        沃畓은 캐타빌라와 군화

        깡통과 껌으로 찢겨 버렸다

        그래도 이 땅엔 평화가 온 것이다.


        웃음이 되살고

        밥물 끓이는 연기가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戰爭」셋째 연-


 장윤우 시인은 「그 겨울 전차의 포신이 느린 그림자」에서 전쟁을 현실의 문제와 연계하여 시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전쟁은 현실이며, 언제나 타의에 의해 빚어진 희극이기 때문에 “내가, 형제가/ 말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戰場”이었다. “山野는 벙커가 되고/ 벌집이 되고/ 沃畓은 캐타빌라와 군화/ 깡통과 껌으로 찢겨버린” 비명 소리 뒤에는 “권력자의 勳章”과 “무기상인들의 경쟁 입찰”이 야합한 “회심의 축배”가 있는 것이 전쟁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처참한 전쟁의 현상에 분노한 시인은 “다신 전쟁에 가담하지 말자/ 전쟁상인들의 동조자가 되지 말자”고 경고의 소리를 외친다. 그리고 다시 “번들번들한 포신 위/ 한 마리/ 피로한 나비여/ 전쟁은 정말 끝난 것인가”를 되묻는 평화에 대한 갈망은 처질한 소리로 들린다. 전쟁이 만들어간 현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지를 깁고/ 비둘기를 올려”도 ‘권력자들의 훈장’과 ‘전쟁상인들의 경쟁입찰’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쉽사리 정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윤우 시인이 전쟁의 생리를 조명하여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50년대의 전쟁과 이 시를 창작한 당대의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전쟁의 본질을 시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게,

        옆으로만 기며

        구멍의 크기, 방위, 얼룩, 반사율과

        포옴을 강제 당했다.


        彈痕 無數한

        地下壕속에서도 

        살아왔던 몸이다

           -〈비오는 날 落塵에 傷한 게 등〉에서-


 전쟁의 현실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게처럼 옆으로 기어 가드라도 살아야 하고, 지하호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전쟁이 생리이다. 군대의 훈련은 적을 죽이는 것과 내가 살아남는 훈련이다. ‘낙진에 상한 게’처럼 “지하호 속에서도/ 살아왔던 몸”이 시인이 의식하고 있는 전쟁의 현실이다. 장윤우는 전쟁을 대상으로 우리 현실이 처한 많은 문제들을 시화하여 공감을 얻고 있다.


 2) 생활과 허무의 형상화


        郊外地의 어둠 속에서

        눈밭을 살라 먹는

        연탄불에 미치고 있다.


        열아홉 구멍의 색색 빛깔에

        구름이며, 학, 대나무, 거북을 보다가

        언 듯 샤갈의 나는

        흰 말 갈기를 연상하고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알았다.


        한 족기 맥주라도 들고

        아아 가고 싶은 곳은 교외선

        석탄 下置場이였다.

-「십구공탄」의 전반부 -


 십구공탄은 60년대와 70년대 우리 서민생활의 전부라고 할 만큼 가장 친근한 생활연료로 사용되었다. 장윤우 시인은 “교외지의 어둠 속에서/ 눈발을 살라 먹는/ 연탄불에 미치고 있다”는 표현으로 연탄이 차지하고 있는 생활의 의미를 시화하고 있다. 연탄은 생활뿐 아니라 예술의 대상이 되어 우리들과 한층 더 가까운 존재로 확대된다.


 “열아홉 구멍의 색색 빛깔에/ 구름이며, 학, 대나무, 거북을 보다가/ 언 듯 샤갈의 나는/ 흰 말 갈기를 연상하고/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알았다”고 말하는 시적 화자는 찰나와 영원의 의미를 석탄을 통해서 확인한다. 석탄 하치장이 주는 일상(日常)은 시인의 눈과 미적인 감수성을 통해서 시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과된 생활의 감성은 독자들의 가슴에 충격으로 나타난다. 시적 화자가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아는 것”은 나이와 더불어 ‘석탄하치장’의 생활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근거가 된다.


 사람의 생활은 항상 허무를 동반한다. 나이와 더불어 자신에 대한 회의(懷疑)가 쌓일수록 무상을 느낀다. 불안과 우수는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오자인생(誤字人生)’의 참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드물게 화창한 날

        집안에 나 혼자 뒹굴며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獨白하는

        中年客이라면 너절한 꼴일까.


        먼지 쌓인 書家에 걸 맞는

        낙서로 꽉 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無常

        눈가에 주름과 한숨으로 찌르는

        좋은 날 오후의 무심한 江

        남는 거라곤 찡그리게 하는 배설물

        誤字투성이 

-「誤字 인생」의 전반부 -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獨白하는/ 中年客이라면 너절한 꼴일까”를 말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장윤우 자신의 자화상이다. 장윤우 시인은 자화상을 잘 그린다.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반추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낙서로 꽉 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無常”의 표현을 통해서 허무를 시의 미학으로 변용한다. 여기서 발견한 ‘誤字인생’은 “비인 盞으로 自嘲의 저녁을 맞는” 시인 박정만의 무상을 장윤우 자신의 허무의식으로 반영한다. 허무는 시인의식을 더욱 강하게 하는 감수성으로 승화되어 이 시를 낳게 한 것이다.


 “어느 결에 55회째나 이른/ 까페 <설파>에서의 詩낭송은/ 明洞의 골목에/ 별난 감회를 던지기도 하거니와”로 시작되는「詩人會議」도 위의 「誤字인생」에  나타난 허무와 무상을 중심축으로 시화한 작품이다. 매주일 마다 박수를 받으며 열리는 시낭송회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허무의 시간으로 느끼는 시의 화자는 “오늘 내리는 비는 눈물인가 기쁨인가/ 술을 마시면서/ 詩와 눈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흘러가는” 시인의 시간에서 자신의 허무를 표출한다.


 “同人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시인의 무상(無常)을 장윤우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시도 시인도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무(無)의 존재라는 것을 예리한 감성으로 형상화한다. 생활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허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시적 승화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 장윤우 시의 매력이다. 이들 작품 이외에도「貧家記」,「헌 책방」,「도시의 바다」등 상당한 양의 작품들이 이 경향에 속한다.


 3) 시의 다양성과 대중성

 

 장윤우의 시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동양적 정서와 조형, 전쟁과 일상, 허무와 가족, 산과 풀잎, 술과 여행 등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과 접근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 시인이다.

 장윤우는 목로주점에서 서민들과 상대하면서 쓰는 투박한 언어를 시어로 사용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다. 상징이나 비유 대신에 일상에서 느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의 접근을 쉽게 한다. 그는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는 항상 대중들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


 장윤우는 한국 시인들 중에서 시화전을 가장 많이 한 시인이다. 서울에서만 전시한 것이 아니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주, 제주 등 전국 순회 시화전을 35회 이상을 하고,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해외 시화전을 3회 이상 전시함으로써 시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는 시화전만이 아니고 시공예전도 열어서 시와 그림, 시와 공예(Craft)의 만남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대중화의 전령사가 되기도 했다.























장 윤 우 (1937 ~ 서울생)  


* 학력

1956     서울 중․고등학교 졸

19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 대학원 졸

1986     미국 Califonia 주립대

          (CAL State LA)연수


*약력(미술,교직)

1958~59 서울대학교 운영위원장겸

          총위원회 학예부장

1966     국제기능올림픽 금세공 출제 및

          심사위원

1968~70 경기공업전문대학 공예과 조교수

1970~현 성신여자대학교 공예과 명예교수

         (산업미술연구소장,

         산업대학원장, 박물관장 역임),

1970~02 서울대, 고려대, 성대, 경희대, 숙대,

         원광대, 단국대, 상명대, 한양대, 강원대,           서울산업대 및 대학원 강사 역임

1978   강원도미술대전 심사위원

1981~82 교통부 정책 자문위원(관광)

1983~83 Crafts Awards

          (Moyer Art & Craft Gallery. U.S.A)

1985~86 충북 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특별시 지방 기능경기대회

          금은세공직종 심사장

1988~   18회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심사위원장

1989~   한국미술협회 회원

          (부이사장 겸 국제조형예술협회

          한국위원회 부이사장및 감사)역임

1989~   가야 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시 예술위원

1987~88 경상남도 미술대전 심사위원,

          5회 복사골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88~   24회 경기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현 경기 미술대전 초대작가 출품 13회

1982~  현 한국미술창작협회 회장

         신미술대전 심사위원장(22회)

1989~   12회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

         현 운영위원장

1989~90 문예진흥원 미술지원 심의위원

1990~15회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20회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심사위원장

1989~  ‘89 현대미술초대전 공예초대 출품,

       5회 전국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20회 서울특별시 공예품

       경진대회 심사위원장

1983~  서울 미술회관 경영자문위원,

         KBS 한국 색채 연구소 자문위원

1979    인도 문부성초청 AFRO-ASIAN Writers

         Work Shop 대표참가

         (New Delhi India)

1981    45차 세계작가회의대표

         (Lyon. Paris France)참가

1982~  현 한국미술창작협회 회장

        신미술공모전 심사위원장 23회.

1986    대한민국공예대전 심사위원(분과위원장)

1989~90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부위원장) 1992~93  미 California State Univ. 교환교수

2000~02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부위원장

2000~현 문광부산하 재단법인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자문위원장(前 이사장)

2000~03  감사원 문화․환경 자문위원

2000~ 현 국제로타리 3640지구 총재보,

       양천로타리크럽 회장역임,현 회원

2002~04 서울공예상 심사위원장

2004~ 과학기술부/과학기술재단

      “Science Korea” 공동대표

2004~현 (사)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

      종이문화원장,종이박물관 관장


* 작품경력

1962~64  11회, 13회 국전 공예 입선(금속)

1965~03  한국미술협회 회원전 출품

1972~    일본초청 개인전(동경 주일공보관)

1973~    일본초청 2회 개인전(동경 주일공보관)

1976      금속 개인전(서울․출판문화회관)

1978      미국초청개인전 

1981     명보랑 기획 초대전

          (서울.하얏트 호텔 Tea spoon전)

1982    현대미술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출품           현대미술초대전

1983~서울금공예회원전출품(‘83’85‘87’89‘97’93‘95’97 서울전, ‘89 동경전․도까사끼현 전)

1989    금속작가 8인전 (중앙일보 주최 호암갤러리) 초대 출품

1988  Contemporary CCAC대학․Bowling-Green State University Ohio U.S.A)

1989    금속공예작가 11인 초대전(서울.명보랑)

1989~97 Contemporary Korean Fibre/ Metalsmithing Exhivition) 초대출품

1990    8회 개인전(서울.미술회관 외)

1990~ 현 전국 무등미술대전 출품(28회) 심사 및 초대 작가

1991~  91.92.93.94.95.96.97 서울공예대전 초대작가 출품(서울 시립미술관)

1992     금속공예작가 11인전(서울.Gallery Bing 초대)

1992~97 서울공예대전 초대출품(92,93,94,95,96,97,99) 시립미술관

1997   제주도미술대전 심사, “1997 문화상품”전,

       서울금속비엔나레(가나화랑)

        18회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96   서울시 문화상 심사위원

1998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심사위원․  민주평화통일 정책자문위원

2001~  중국 省都초대전 (泗川省)

2002~  서울시 “찾아가는 문화재” 심사위원장 3회

2002~  이스탄불 초대전

(Turkey Istanbul 시립미술관)

2002~03 1.2회 한국전통공예대전 심사위원장(세계일보 주최)

2003~  한국공예대전 심사위원장(익산)

2003~  우즈베키스탄 초대국제전/ 타쉬켄트국제비엔나레 특별전(국립중앙박물관)

1997.11.14~19  7회 개인전(서울.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8.10.7~28  개인전(서울.양천문화회관 기획전시실)

1999.1.14~2.17 개인전(서울시청-별관) -1999.3.2~27 초대개인전(조흥갤러리.서울)

2002~   2002 부에노스, 서울 깃발 Festival展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미술관)

2003.1.4~7 일본 동경 금속개인전(Gallery Space ZERO)

2004~   한.필립핀전 (마닐라 미술협회화랑)

2004.5~ 국제 뉴-살론전 (서울,리메르 화랑) 회장및 출품

2004.3.1~31  서울 세종문화회관 (삼청각) 초대 금속개인전

2005,1~ 서울 인사동 31갤러리 금속초대전


* 수상 및 감사패

1983  8회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

1986  동경 아세아미술대전 초대작가상

1961  국방부장관 공로상(57호)

1976  한국문인협회 감사패, 영화평론가협회 감사패, 광운대학교총장 감사패

1991 한국예술문화 특별공로상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1991  문교부장관 표창 (201호)

1996, 1997 국무총리표창(30717호), 한국미술창작협회 감사패

1998 서울시장 표창

1998  서울시 문화상(미술),  -헌법재판소장 감사패

2000  국제예술문화상(예술의 전당)

2003. 12  예총 예술문화 대상(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2006,  제8회 시예술상

2004. 2  국민훈장 황조근정 훈장

2006. 관광 표창


* 조형물 제작 및 소장

서울 교육문화회관 야외조형물

천원,독립기념관 어록비(박은식.양기탁)

서울,전쟁기념관 부조조형물

(육,해,공,해병,경찰 5점)

안산, 영풍 맘모스프라자 야외철조형물

서울 현대빌딩 야외조형물 (양재동 높이 7미터)

한국교총회관 로비 벽장식 2점)

부천,해태쇼핑 야외금속조형물

충북 忠州호 조각공원 야외조형물

서울 양천구, 야외분수조형물, 
양천문화회관 야외금속조형물

일본 후시노 기념관(古川市)소장,서울시립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서울 미도파 상계백화점 실내 금속조형물(높이 약10미터) 외 다수-


*문학

1963,1,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겨울동양화>당선.

 

저서

     공예재료연구, 공예재료학,  도학 및 제도

     시집/ 겨울동양화, 속 겨울동양화, 시인과 기계, 화가 슬픈 성주의 손,

     두사람의 풍경과 리삼월, 그림자들의 무도회, 세 번의 종, 형해의 삶,

     수필집/ 화실주변, 장윤우 예술시평집, 그림과 시의 팡세.

    중학,미술교과서 中1,2,3. (교육부 검정도서) 외 다수.

1983  한국현대시인상(한국현대시인협회)

1986  동포문학상(한국문인협회)

1992  제1회 시와 시론 본상,    순수문학 대상

1961  국방부장관 공로상(57호)

1976  한국문인협회감사패, 영화평론가협회 감사패, 광운대학교총장 감사패

1982  한국귀금속공예회장 감사패, 백제미술대전 운영위원회 감사패

1989  디자인뉴스 사장 감사패, 현대시학 사장 감사패

      청동문학회 회장 감사패

1991 한국예술문화 특별공로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1991  문교부장관 표창 (201호)

1995  한국문인산악회상 및 감사패

1996, 1997  국무총리표창(30717호), 한국미술창작협회 감사패

1998  서울시 문화상(미술),  헌법재판소장 감사패

2000  국제예술문화상(예술의 전당)

2002. 11 영랑문학대상 수상

2003. 12 예총 예술문화 대상(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2005,    한맥문학 대상

*주소 ; 서울시 양천구 목6동 902 신시가지 아파트 212-102

        전화 02-2648-6780  팩스 02-2654-9808 직 2264-4561 회장실

        핸드폰 011-733-6780.

 E-mail ; ywchang37@hanmail.net  ywchang@sungshin.ac.kr

  ...............................................................

작가 편린(片鱗)-화보





출처 : 장윤우의 예술산책
글쓴이 : 목훈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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